[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 통합적인 우리 문화
미국에 와서 살면서 문화라는 개념을 어느 때보다 더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자녀를 교육하는 환경으로서의 문화는 무엇이고, 그 차이가 과연 교육에서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는 늘 나의 관심이 되어왔다. 한국식으로 하면 좋은 방법과 미국식으로 하면 좋은 방법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그 방법들을 적용해야 하는가, 부모와 자녀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두 문화의 장점만을 추출하여 자녀에게 유익한 것을 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은 늘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학문과 교육에서 '융합'과 '통합'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음을 알게 되었다. 학문 사이의 교류가 통합으로 가면서, 세상은 이제 한 가지만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여러 방면을 두루 알아 통찰력 있게 세상을 보면서, 전에 없던 것을 새로 창조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우리 문화가 본래 통합적이었으며, 서로 다른 것을 단순히 분리하기보다는 세상의 부분으로서 연결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많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미국에는 모든 상황에 대해 낱낱이 서술하고 대비하는 규정들이 한국에 비해 많다. 기술적으로 절차를 밟아야 할 일들에 관해 정해 놓은 규정들은 그 존재 가치가 이해가 가지만, 어떤 규정들은 기술과 절차 이전에 가치관과 의식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인데도 기술적인 접근을 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한 예로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말로 괴롭히거나, 힘으로 괴롭히면 어떤 징계를 받고, 학교의 교칙을 어기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된다고 일일이 명시하고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는 서명도 받는다. 그러면 나는 그런 세세한 규정 없이도 약자를 보호하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배웠던 어릴 적 한국의 교육이 그립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가족, 사회, 국가로 연결된 동심원의 관계와 연대감을 가르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내 눈에는 '독립'과 '자유' 같은 가치들을 아직 분별력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규정에 의해 정해진 것 외에는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하고, 작은 일에도 책임을 따지는 분위기는 준법 정신을 키워주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도 있으나, 창의력을 키우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람과 일을 사랑하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자기가 필요한 약을 안가져 온 항공기 승객이 옆 좌석의 승객이 그 약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얻어서 먹으려 해도, 의사의 진단없이는 절대 약을 못먹게 했던 승무원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규정을 지킨 그 승무원은 잘 한 것일까?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 사고 없이,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한 예이다. 서구인들이 주로 관찰하고 분류하여, 체계를 세우고 그러면서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정확히 수치화하여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만물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통합적으로 우주가 돌아간다는 관점 아래, 한 부분을 잘 되게 하려면 전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두통이 있을 때, 두통을 직접 치료하는 양약과 온몸의 기를 잘 순환하도록 하여 건강을 찾는 한약은 그 상징과도 같다. 우리 문화는 오래 전부터 통합 지향적이었으며, 그 뿌리를 이미 인문학에 두고 있었는데도 서구 합리주의와 과학기술 만능주의로 인해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다가, 근래 들어 그것이 마치 서구에서의 시행착오 끝에 찾아진 개념이라고 여기면서 호들갑을 떠는것은 아닐까? 부모와 내가 하나이고, 주변의 친구와 사회 구성원들도 모두 하나로 여기어 함께 잘 살아야 함을 가르치면 좋겠다. 법만이 아니라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남을 이겨야 기쁜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되어야 행복함을 알려주면 좋겠다. 김정수 에듀워싱턴 디렉터, info@eduwashington.com